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순경 사건 (문단 편집) == 이후 == 위 사건은 대량 학살급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하루 뒤 조간신문이 아닌 석간신문에 보도됐는데 이는 1980년 11월 [[언론통폐합]] 이후 주재기자 제도가 금지되어 [[연합뉴스|연합통신]] 타전에 의존했기 때문이다. 당시 연합통신이 보낸 것도 내용이 엉성해 뉴스 당일 오후에 기자를 파견하고 나서야 자세히 알려졌다. 사건 몇 달 후 '충견 바둑이 오보 사건'[* 저수지에서 놀다 물에 빠진 어린이를 바둑이라는 개가 구출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현장에 간 기자들이 자세한 취재를 한 결과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사건이다.[[http://www.mediatoday.co.kr/news/articleView.html?mod=news&act=articleView&idxno=9985|#]]]을 계기로 주재기자제 재도입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우순경5.jpg|width=100%]]}}}|| || 구속되는 궁류지서장 || 국민을 지켜야 할 경찰이 전대미문의 흉악범죄를 저질렀다는 충격과 사건 진행 당시 진압을 위해 출동한 경찰들의 비열함과 무능함에 피해가 커졌다는 점 때문에 전국적으로 여론이 폭발하여 [[전두환]] 정부는 내각 사퇴 압력에 직면했다. 가뜩이나 1982년 당시는 [[전두환]]이 막 정권을 차지한 상태였고 1월 [[두발자유화]]와 2월 [[야간통행금지]] 폐지, 3월 [[KBO 리그]] 개막으로 지지율을 얻기 위해 빗장을 풀고 있었는데 이런 사태가 터졌으니 발등에 불 떨어진 전두환 정권의 후속조치는 이례적으로 빨랐고 당시 경찰 관계자들에 대한 조치도 선처벌 후조사였을 정도였다. 이렇게 정부합동조사반은 이 사건이 상부에 보고도 늦고 출동도 늦은 데다 진압마저 미온적이었기 때문에 궁류지서장 허창순, 의령서장 최재윤을 [[파면]]·구속 기소하고 관계자 수 명을 직위해제시켰다. 내무부 장관이던 [[서정화(1933)|서정화]][* 서정화는 [[한화그룹]] 창업주 [[김종희]]의 사돈이다. 즉 [[김승연]]의 장인이다.]는 책임을 지고 문책성으로 사임하였고 후임으로 [[문화체육관광부장관|체육부 장관]]이었던 [[노태우]]가 임명되었다. 그리고 국회 내무위에선 야당 의원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치안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체계와 무기 관리 등 당국의 치안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내각 총 사퇴까지 요구했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Dr3yZPQpmII)]}}}|| || 의령군을 찾은 전두환의 모습을 담은 1982년 5월자 [[대한뉴스]] || 전두환 정권은 지역 주민들의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해 전두환이 직접 의령군을 찾아 주민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약속하는 한편, 국가 차원의 대책위원회를 열어 대대적인 보상을 실시했다. 사건이 일어난 의령군 등 서부 경상남도 지역은 [[대경권|TK]]와 함께 [[대한민국 제5공화국]]과 여당인 [[민주정의당]]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으므로[* 흔히 '''PK'''라 불리는 [[부울경]]은 [[김영삼]] 대통령의 정치적 본거지였기 때문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. 하지만 이는 부산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된 동부 경남에만 해당되는 얘기고 의령군 같이 농촌이 많은 북서부 경남은 신군부와 민주정의당의 지지세가 훨씬 더 높았다.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인데, 서부 경남은 동부 경남에 비해 [[대한민국 보수정당|보수정당]]의 지지율이 굉장히 높게 나온다. 전두환이 의령 위에 있는 [[합천군]] 출신이기도 하다.] 전두환이 아무리 간선제로 당선된 대통령이지만 눈치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. 유족들에게는 대학 등록금 및 의료비 지원 방안이 이루어졌고 궁류면에 대한 인프라 구축 사업 역시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시작되었다. 먼저 의령읍~정곡면 간 11km 국도를 새로 포장한 뒤 군도였던 의령~궁류 간 12km 도로를 지방도로로 승격해 경상남도 예산으로 새로 포장했다. 또한 마을 안길 포장, 교량 가설, 주택 개량, 농로 개선 등 총 12개 부문 환경개선 및 생산기반 시설 사업이 진행되었고 평촌마을 윗쪽에 벽계저수지 및 보가 설치돼 궁류면은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됐다. 그러나 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궁류면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. 이 사건으로 [[경찰공무원]] 임용규정이 개정되어 경찰공무원 응시자에 대해 고졸 이상부터라는 학력 제한 규정이 제정되었으며 인적성 검사와 전과 등 [[과사실]] 유무에 대한 조회가 시작되었다. 그런데 사실 우범곤은 전문대 중퇴 학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학력 제한이 예전부터 있었다고 해도 충분히 응시할 자격이 되었다. 당시 의령경찰서장 최재윤에 대한 대법원 공판[* 재판관이었던 대법관 중 한명이 바로 [[이회창]]이었다.]에서는 형법 직무유기 관련 중요 판례로 "...직무유기죄가 성립하려면 주관적으로는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과 객관적으로는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나는 행위가 있어야 하고 다만 직무집행에 관하여 태만, 분망, 착각 등 일신상 또는 객관적 사정으로 어떤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에는 형법상의 직무유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. 그 조치가 다만 적절하지 못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형법상 직무유기죄가 성립할 수 없는 것"으로 결국 직무유기죄는 불성립되었다. 그리고 파면 처리되었던 것도 징계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고 무효가 됐다.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5101100209211014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85-10-11&officeId=00020&pageNo=11&printNo=19701&publishType=00020|#]] [[의령군]]은 2022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위령비를 건립할 계획이라고 한다. 2023년 11월 10일 위령탑 디자인이 확정되었고,2024년 4월 완공 계획이라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